보리와 아침마다 월평마을을 한바퀴 돈다. 매일 하는 이 산책에서 최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돌담 위로 잎을 활짝 펼친 빨간 동백꽃의 모습이다. 돌담 위의 그 동백꽃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제주도에서 일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백꽃 군락지를 팀원들과 함께 갔었다. 그땐 단순히 여행으로서 지나가던 길에 들렸던 것이기도 하고, 또 여름이 시작되는 때 였기에 꽃 한송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워낙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은 곳이 되었지만 그 당시엔 위미리 동백꽃 군락지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뭔가 히든 플레이스를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였고 꼭 이곳에 들려서 컨텐츠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내내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 겨울이 오기 전까지 동백꽃 군락지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난 동백꽃이 뭔지도 잘 몰랐다. 그냥 옛날 노래 가사에 나오는 걸 들은 정도였지 실제로 본 적도 없으니깐. 간혹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보게 되는 빨간 꽃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장미이곤 했다.운전을 하게 된 뒤로 혹시나 꽃이 폈을까 해서 몇 번 들렸었다. 그때마다 보게 된 건 조그마한 꽃봉오리였는데, 드디어 겨울이 왔고 동백꽃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거다.

‘위미동백나무군락’을 치게 되면 주소가 두개 등장한다. 나는 위치 주소상 <위미중앙로300번길 23-7>에 있는 동백나무군락 포인트를 지정하고 갔는데, 이곳을 찍고 가면 조금 허무한 장면이 등장한다. 차는 주차할 공간 없이 빽빽한데 동백나무엔 꽃이 별로 없고 바닥엔 떨어져 썩어가는 꽃들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게 뭐야’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데 여기서 실망하지 말고 마을의 옆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보자. 5분정도 걷다 보면 멀리 자홍색 구름 같은 모양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고, 5분을 그곳을 향해 걷다보면 커다란 자홍색 정원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 <위미리 929>로 나오는 포인트를 찍은 여행객은 이곳으로 바로 올 수 있을 것이다.

뭐랄까,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게 되면 거기서 하쿠라는 남자 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데리고 풀숲과 꽃밭을 뛰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곳이 그 영화의 배경을 따다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무언가, ‘라이프 오브 파이’의 CG 장면 중 하나 같기도 했다. 꽃이 열려있는 나무만이 이쁜 것이 아니라 길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많은 꽃잎들이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어 냈다. 한 가지 들은 얘기론 동백꽃은 무궁화와 같이 꽃 자체가 떨어지는 식물이라고 한다. 동백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의 입장료는 3,000원이다. 현금만 받기 때문에 미리 돈을 챙겨서 오자. 반려동물과 입장하려면 추가 요금은 없으며 안고서 입장해야만 한다. 이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안전을 위해서도, 반려동물의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보리는 혹시 모르는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목줄도 짧게 쥐고 안았다. 워낙 민감한 친구라서 주변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괜찮지만 만져보려는 관광객의 요청은 정중히 거절했다.

강아지는 코가 민감한 동물이라서 그런지 보리는 그 안에서 한동안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기 바빴다. 육지에서 같이 지낼 때를 생각해보면 사실 꽃구경을 같이 갔던 적이 없던 것 같다. 벚꽃이나 매화가 피었을 때 동네를 같이 산책 했던 기억은 있지만 꽃내음을 보리에게 가까이서 맡게 해준 경험은 없었다. 강아지들은 이런 후각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 보리의 즐거움을 내가 여태 배려를 잘 못해준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주변의 많은 연인들이 이 아름다운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는데 나도 뭔가 보리랑 다정한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삼각대가 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미처 챙기지 못했다. 때문에 주변 돌담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타이머 설정을 한 뒤 열심히 뛰어다녔다. 데제인들은 조그마한 삼각대라도 챙기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을 찍으면서 기분이 묘했던 건, 보리는 보통 안기면 내가 바라보는 곳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대부분 내가 바라보는 방향의 반대로 몸과 고개를 돌리는데 이날은 유독 내가 바라보는 카메라를 잘 쳐다봐줬다. 30분을 카메라 앞에서 뛰어다니며 타이머 촬영을 했는데 보리가 너무 잘 따라줘서 유쾌한 기분에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면, 이번 제주견학이 너무 보람찼는데, 유독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마 보리와 이렇게 사진을 남겼다는 사실 때문이지 않을까. 6년동안 보리와 함께 하면서 이렇게 가족같은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다. 육지에선 언제나 다른 것들이 우선시 되었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남긴다는 것은 생각하질 못했었다. 앞으로 제주도에 유채꽃, 벚꽃, 수국, 청보리 등 다양한 꽃들이 피게 될 텐데 그 모든 장소들을 보리와 함께 여행을 해야겠다. 그때도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운 여행 사진을 남겨야지 생각한다.

<이 콘텐츠는 독립출판 '제주犬학'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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