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끝자락이 밀려드는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서퍼들을 보고 있으면, 그들은 마치 용맹한 전사들 같다. 커다란 서핑보드를 창처럼 들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뒷모습은 일견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헤엄쳐 간 먼 바닷가에서 파도를 기다리며 늘어서있는 서퍼들의 라인업에는 커다란 전투를 앞둔 듯한 전운이 감돈다. 서핑보드 하나에 의존해 자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전사. 그것이 서핑을 하지 않는 내가 받았던 서퍼에 대한 인상이었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있다. 서핑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직접 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매력. 그리고 그 매력에 빠져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들. 대평리에 위치한 서프 비스트로 듀크의 사장 양진성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소위 말하는 우리나라 1세대 서퍼. 서핑이 지금처럼 대중화 되기 훨씬 전부터 서핑을 해왔던 그는 서핑의 매력에 빠져 제주로 이사왔고,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이자 삶이 된 서핑을 본인의 가게에 녹여냈다. 아주 사적인 제주 세 번째, 서퍼들의 아지트 듀크 서프 비스트로에 대한 이야기다. 

그럼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해주세요

저는 서핑을 너무 좋아해서 제주도로 이사 와 대평리에서 자그마한 듀크 서프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는, 서퍼이자 오너 셰프 양진성이라고 합니다.

서핑을 처음 접하신 계기,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도 초반에 저희 때 어학연수 붐이 많이 불었어요. 그래서 저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었죠. 근데 제가 한국에서 수영강사도 했고, 원래 수영에 좀 관심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호주에 가서 서프 레스큐, 그러니까 인명구조를 시작했어요. 그때 당시 함께 일을 했던 친구들이 서퍼여서 자연스레 서핑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럼 호주에서 돌아온 뒤에 서핑 때문에 바로 제주도로 내려오신건가요?

처음에는 그럴 계획은 아니었어요. 당시에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원래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도 하는 등의 평범한 계획을 갖고 있었고, 서핑은 그냥 취미 수준이었죠. 근데 취업 준비를 하는 등의 힘든 시기에 제게는 서핑이 돌파구였고, 그렇게 점점 더 서핑을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반적인 회사에 취직해서 4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웃음). 그때 문득, 서핑도 하고 작은 가정을 이루며 소박하게 살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이 크게 없었던거죠. 그래서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당시엔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었고, 부모님이랑 동생이랑 같이 내려왔어요.

왜 제주도에 내려와서 서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합니다. 제주도가 서핑하기에 좋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지점일 것 같습니다.

호주에서 보드를 챙겨 돌아오면서 한국에서도 서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4~5년 동안은 부산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꽤 유명해진 강원도쪽 포인트까지 한번 쭉 여행을 돌았어요. 근데 막상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주말에만 서핑을 할 수 있었고요. 파도가 좋은 시기에는 평일이 걸려서 제가 안되든지, 제가 시간이 될 때면 파도가 별로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다가 2000년도 중반 즈음에 제주도에서 서핑 대회가 열린다는 다음 카페 공지를 봤어요. 그래서 그때 ‘제주도에서도 서핑을 하는구나’하는걸 알게 됐고, 그 대회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금 알고 있는 로컬 서퍼들을 알게 됐어요. 그렇게 교류를 하면서 제주도에 외국서나 보던 그림 같은 파도가 올라온다는걸 알게 됐고, 제주도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됐어요.

그럼 거의 1세대 서퍼? 이신 셈인가요?

음…제가 저 스스로 1세대라고 지칭하기엔 조금 민망하고요 (웃음). 사실 호주에서 처음 서핑을 시작했을 땐 한국에서 서퍼는 나밖에 없다! 하고 자만했었거든요. 근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까 많지는 않았지만 꽤 계시더라고요. 그때 부산에서도 한 열 분 정도 봤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1세대니 2세대니 하는 세대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요즘에 보면 불과 몇 년 안된 서퍼들도 저보다 잘해요. 제가 훨씬 더 먼저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물론 실력이 다는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도 세대 구분이나 이런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뭐 서핑을 오래 탄 사람의 추억이라면 추억일게, 햇수로는 10년도 넘게 했으니까 제가 처음 시작할때는 리쉬나 수트도 구하기 힘들었어요. 듀크 사부님이라고 불리는 분이 보드 던져주고 가시면 그걸 타기도 하고 그랬죠.

원래 요리를 배우시거나 하셨던건가요?

아니요. 저는 기계공학과 출신이었고 평범한 회사원이었어요. 근데 제주도에 막상 내려왔더니 일자리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서핑만 6개월 재밌게 타면서 방황하다가,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장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호텔 주방에서 설거지부터 하면서 무작정 요리를 배웠어요.

사실 서퍼들은 서핑 관련 일을 하고 싶어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보드나 수트 등을 유통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죠. 근데 제일 큰 문제는 자금이었어요. 그리고 유통이라는게 쉬운 분야가 아니기도 했고요. 사실 자신이 없었던거죠. 그러던 중에 일본 도쿄 치바에 2주 정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 'Sea Song'이라는 이름의 서핑 식당을 봤어요. wsp같은 월드 클래스의 대회가 열리면 앤디 아이언스, 캘리 슬레이터 같은 유명한 선수들이 그 식당에 들러서 식사도 하고 파티도 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놨더라고요. 그때 문득 제주도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고, 그게 모티브가 되어서 듀크 서프 비스트로를 꿈꿔오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보면 서퍼들은 서핑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한다고 하셨었는데, 그 길을 본인이 직접 찾으셨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듀크라는 이름도 서핑과 관련된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듀크는 제주도에 이창남 사부님이라고 듀크 사부님이라 불리는 분이 계세요. 그 분이 96년도 즈음에 색달 해녀의 집 앞 포인트를 처음 발견하셨고 그 분의 다음 카페 닉네임을 따서 그 장소를 지금의 듀크 포인트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부터 듀크 포인트를 너무 좋아했고, 자주 서핑을 타던 장소였어요. 그래서 저 장소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러던 중에 서퍼들이랑 모여서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가게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저는 원래 ‘건이네’라고 지으려고 했었거든요. 제주도에서는 자식 이름을 따서 상호를 짓는 경우가 많아서요. 근데 다들 별로라는거에요 건이네가. 듀크로 하라고. 서퍼들이 다들 아는거니까 듀크로 하라더라고요. 근데 좋더라고요 듀크도. 그래서 가게 이름을 듀크로 짓게 됐어요.

요리는 그럼 호텔에서 어느정도 배우신건가요? 

2010년부터 배워서 5년 정도 배웠고, 2016년에 가게를 냈어요. 요리도 서핑이랑 비슷해서 쉽게 빠르게 하는 것 보다는 시간이 지나야 점점 더 느는 것 같아요. 요즘은 인터넷에 보면 레시피나 요리 만드는 방법에 대한 영상들이 많은데, 정보도 중요하지만 직접 경험해보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 일과가 보통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가게를 열기 전에 새벽 같이 서핑을 하러 나가시나요?

예전에는 새벽 서핑을 즐겨 탔어요. 새벽 네 시 반 이럴때에 물 시간 맞춰서 나가고 이랬는데, 지금 현재는 일어나고 싶어도 아이들도 있고, 아내도 있고... 챙겨야 될 사람들이 있어서 새벽 서핑은 못하고 있죠. 요샌 대신에 주짓수를 하고 있어요.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서 주짓수 갔다가, 점심먹고 가게에 와서 준비하고 오픈을 하는 식으로 하루 일과가 진행되는 것 같아요.

듀크 서프 비스트로만의, 서핑이라는 주제를 잡은 가게의 특징이라면 무엇일까요?

거창한 개념이나 철학을 담은건 아니에요. 근데 제가 서퍼니까, 자연스럽게 제 생각이나 정체성이 가게에 반영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것들이 전부 제가 서핑하면서 타다가 못 쓰게 된 보드들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천장에 올려서 장식하기도 하고, 여행 다니면서 샀던 서프 보드 핀이나 잡지 등을 가게에 하나 둘 들여 놓으면서 서퍼로서의 특징이 드러났고, 그게 가게가 지닌 어떤 ‘서프 비스트로’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또 하나 인상깊었던게 듀크에서 하는 테이크-오프라는 모임이었거든요.

솔직하게 말하면 장사를 위해서 시작한거였어요. 처음에는 마케팅이나 홍보에 대한 지식도 없고, 식당은 맛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몇 개월 지나고 손님이 많이 오지는 않으니까 지인들이 마케팅을 해야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돈 주고 하는 마케팅은 싫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떤 홍보를 할까 싶었는데, 서퍼들이 모여서 이 공간에서 정보교류가 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메인이 되는 서퍼 혹은 다른 여러 서퍼들이 서로에게 서핑을 가르쳐주고 질문도 받는 모임을 만든거에요.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은 꾸준히 했던 것 같네요. 우리 가게가 꼭 가지고 가야 할 정체성 같은 이벤트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서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아졌습니다. 그런 초보 서퍼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게 어떤것이 있을까요?

서핑은 파도면이 필요해요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처럼. 근데 한 도로에 여러명이 달리면 서로 충돌하기 쉽겠죠? 그래서 서핑은 룰이 있어요. 얼핏 보면 아무나 파도에서 타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그 룰을 숙지하는게 필요해요. 본인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런 룰을 숙지하고 들어가야죠. 부딪히면 다칠 위험이 있으니까.

서핑을 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이처럼 삶의 방향을 바뀌게 하는 서핑의 매력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요리를 하니까, 요리에 비유를 하자면 맛을 보니까 잊혀지지가 않더라고요. 그 맛이 어떤 맛인지는 먹어봐야 아는 것 같아요. 너무 원론적인 답변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에 저는 서핑을 타는 멋있는 서양 친구들을 보고 저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했어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너무 어렵더라고요. 흉내 낼 수도 없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 조차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그때 만약 제가 몇 개월 만에 잘 탔으면 오히려 지금까지 안탔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안되니까,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계속 탄거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매력들이 곳곳에 퍼져있어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옛날에 친구들과 즐겼던 추억 때문에도 타는 것 같고요. 

저는 그래서 앞으로도 서핑을 평생 할거고, 죽을때까지 하고 싶어요. 제게 있어서는 평생의 수련이랄까? 예전처럼 하루에 세 번 네 번 탈 수는 없지만, 건강관리를 조금 해서 파도가 있는 날이면 언제든지 서핑을 타고 싶어요. 큰 돈을 벌거나 이런 것 보다는 제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서핑을 하는데에 시간할애도 조금 많이 하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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