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커피가 과소비의 대명사로 불리며 악명을 떨치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프랜차이즈 카페라는 개념이 생소했을 때의 일이다. 그러나 이화여대 앞에 우리나라 최초의 스타벅스가 생긴 1999년 이래로, 우리나라에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커피라면 다방이나 커피믹스, 자판기 커피를 떠올리던 시절에서 이제는 아메리카노를 떠올리는 세상이 된 것이다. 커피 한 잔에 몇천 원씩 돈을 쓰는 일도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라는 낯선 음료를 마셨던 건 스무 살 무렵이었다. 친했던 학교 선배를 따라 스타벅스에 갔고, 내겐 너무 어렵고 낯선 곳이었던 그곳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선배를 따라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이윽고 나온 검은색 음료를 한 입 들이키자마자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믹스커피, 자판기 커피, 캔 커피나 마셔 본 내게 그 커피는 너무 썼다. 어른의 맛이었다. 설탕을 들이붓고 싶었으나 아메리카노는 무조건 시럽을 빼고 먹어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나는 꾸역꾸역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아메리카노는 내겐 그저 맛없고 쓰디쓴 한약 같았지만 나는 그것이 단지 내가 촌스럽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커피의 쓴맛, 그건 세련됨이자 어른의 맛이었다.

이제는 커피의 쓴맛을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커피는 내게 낯설고 어려운 음료다. 겨우겨우 스타벅스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는 각양각색의 원두를 로스팅하는 커피 전문점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며 내 선택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코스타리카니 에티오피아니 하는 활자로만 봐선 도저히 알 수 없는 이국의 이름이 적힌 원두들.

서귀포 시내에 위치한 카페 우군은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원두를 쓰는 ‘전문적인’ 커피 전문점이다. 사장님의 커피에 대한 고집스러움과 자신감은 가게 한 켠에 걸린 현수막에서부터 드러난다. (물론 저 현수막에 걸린 문구처럼 수정요청을 해 보진 않았다)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에 서자, 메뉴판에 보이는 수많은 음료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라떼, 과일주스부터 조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맛있을 것 같은 필터 커피까지. 선택지가 무척 다양하다. 고질병인 선택 장애를 이겨내고 메뉴에 적힌 수많은 음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내가 선택한 음료는 필터 커피. 핸드드립으로 내리는 커피인데, 메뉴를 선택하고 나니 이번엔 원두로 커피를 내릴지 선택해야 한다. 누군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이름도 어려운 저 이국의 원두들(코스타리카 뭐뭐, 에티오피아 무엇, 과테말라 어쩌고…등 발음하기도 어렵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주문을 받는 바리스타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평소 어떤 커피를 즐겨 마시는지, 어떤 느낌의 커피를 선호하는지 등등. 내가 쓴맛의 스타벅스 커피에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더니 ‘강배전’으로 로스팅한 원두를 추천해주신다. 강배전? 강배전에 관해 물어보니 강배전은 커피 원두를 강하게 볶은 원두라고 한다. 반대는 약배전. 강배전한 원두일수록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커피의 쓴맛이 강해진다고. 쓴맛의 원두를 골라 주문하자, 함께 온 지인은 로스팅이 잘 됐다는 다른 원두를 주문했다. 그 원두는 산미가 꽤 있다는 설명이 뒤따라왔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직원분이 산미는 약간의 신맛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커피에서 신맛이 난다고?’

카페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순간은 다름 아닌 이렇게 카운터 앞에서 주문할 때다. 내 뒤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앞에는 내 앞에선 나만 쳐다보고 내가 무엇을 주문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직원 사이에서 오는 가벼운 공황상태. 이럴 때 바리스타가 건네는 한 마디 친절한 추천은 손님에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다. 본인의 커피에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바리스타가 주는 신뢰감이기도 하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를 직접 자리로 갖다 주신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커피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깝다. 자주 마시는 커피는 스타벅스 커피이며, 그 특유의 탄 것 같은 쓴맛이 커피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렇게 ‘맛있다고 하는’ 커피의 풍부한 맛을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군에서 마신 커피가 지금까지 내가 마셔 온 커피와는 다르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건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만 마시던 내가 맨 처음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 만큼의 충격에 버금갔다. 내가 시킨 쓴맛이 강한 커피는 으레 마시던 그것과 비슷했으나, 지인이 시킨 ‘산미가 있는’ 커피라 불리는 다른 원두의 커피는 확실히 달랐다. 뭐랄까, 스타벅스 커피가 순식간에 저렴해지는 맛이었달까. 이 고급스러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졌다. 적당히 새콤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과일 향이 일품이었다. ‘아, 이런 걸 두고 커피에서 과일 향이 난다고 하는 거구나’하고, 나는 또다시 커피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촌스러운 입맛을 가졌음도 깨달았다.

제주의 카페 하면 흔히 바다가 보이거나 경치가 좋은, 분위기가 그럴싸한 카페들을 떠올리곤 하지만, 카페 우군처럼 커피 맛이 훌륭한 카페들도 존재한다. 카페 우군은 경치, 분위기보다는 커피 본연의 맛에 충실한 카페다. 물론 카페 내부의 분위기 자체도 촌스럽거나 과하지 않고 적당히 아늑하고 알맞게 트렌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카페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커피의 맛이 아닐까. 사장님이 커피의 매력에 빠져 커피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지 햇수로 8년이 넘어간다고 하니, 내가 이제 막 스타벅스의 맛에 익숙해졌을 무렵부터 커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신 셈이다.

 

카페 우군은 기존의 획일화된 원두에서 벗어나 새로운 원두를 찾아 손님들께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페셜티라 불리는 한국 어디에도 없는 우군 만의 커피를 손님들께 제공하고 싶다고. 이 같은 대화에서 커피 맛에 대한 카페 우군만의 강한 자부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카페 우군은 서귀포 시내에 있어 오가며 들르기도 나쁘지 않고, 옆에 주차타워가 있어 주차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서귀포에 왔다면 한 번쯤 들러 전문가가 추천해주는 커피를 맛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아마 카페 우군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당신도 나처럼 커피 맛의 신세계를 경험할 것이다.

 

*커피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만드는 밀크티 등의 다른 음료 역시 맛있기로 소문이 나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밀크티를 마셔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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