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은 시간 찢어질 듯 귓속을 파고드는 알람 소리가 울리면 어김없이 억지로 눈을 뜬다. 꾸역꾸역 준비를 마치고 의미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발 디딜 틈 하나 없는 지하철 2호선에 내 한 몸을 겨우 구겨 넣으면, 그렇게 또 똑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나를 돌아볼 시간 여유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고, 인간관계에 서서히 지쳐가다 보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하는 공허한 물음에 닿는다. 그럴 때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그냥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일상이 힘에 부칠 때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연을 찾는다. 제주를 찾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의 연장선에 있지 않을까. 처음 제주를 여행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청량한 음료를 쏟아부은 듯 반짝이는 바다를 따라 달렸다. 그러나 월정리처럼 색이 유난히 예쁜 해변가엔 도시의 냄새를 가득 묻힌 카페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도시의 번잡함이, 관계의 복잡함이 싫어 떠나온 제주에서까지 도로를 달리는 차 소리와 사람들에 파묻히고 싶지 않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조용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숨겨둔 나만의 작은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화 해변에서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조용하고 작은 마을 하도리가 있다. 조금만 걸어가면 예쁘고 한적한 하도 해변을 만날 수 있고, 동네를 걸으며 제주의 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소박한 마을. ‘하도리오길잘했어’는 이곳. 하도에 자리잡고 있다.

7년간 속초에서 펜션을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왔다는 주인 부부는, 돌아보니 여유 없이 일만 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에 제주로 이주를 결심했다고 한다. 돈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일을 ‘일’로만 대하지 않고 정말 즐기면서 하고 싶었다는 부부. 그래서인지 이 공간은 그들이 생각하는 여유와 시간이 주는 행복이란 감정을 닮아있다.

안쪽을 향해 깔린 작은 돌길을 걸어 들어가면 조용한 앞마당과 옛 제주 농가주택의 정겨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이 게스트를 맞이한다. 골목에서 제법 쑥- 들어간 위치의 디귿자 구조의 집. 그래서인지 마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공간 외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제법 속세와 단절 된 것 같은, 자발적 고립의 느낌이다.

“회사를 퇴사하고 난 후나,여러가지 힘든 문제들로 생각 정리를 하러 오는 게스트가 많아요.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정리하고, 생각하고, 또 때로는 다 내려놓고 갈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드리고 싶었어요.”

주황빛의 조명, 나무의 느낌, 민트색의 타일. 다섯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공간에서 처음 받은 감상은 ‘주변을 감싸는 따뜻함’이었다. 공간을 직접 꾸민 주인의 이야기처럼 곳곳에 놓인 소품과 조명은 그 자리에서 각자의 감성을 뿜어내며 게스트에게 포근함을 전한다. 나름의 사연과 시간을 가지고 여기까지 흘러 왔을 빈티지 소품들이 주는 이상한 따스함이 있다.

창이 세 방향으로 난 방에서 하루를 지냈다. 각 창에는 서로 다른 질감의 커튼이 달려있고, 또 그 창 밖으로는 뒷마당에 위치한 서로 다른 나무의 잎이 살랑인다. 창 밖의 풍경이 그대로 액자가 되는 것 이라면, 이 방에선 세 가지 자연의 그림을 볼 수 있다.

모든 미디어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설명처럼, 이 곳엔 TV가 없다. 이 풍경을 마주하고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자니 그건 이 방에게 실례를 범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요히, 가만히 누워 주변을 살펴보다 눈을 감았다. 이내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의 소리가 말을 걸어온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바닥에 일렁이는 빛의 움직임이 슬며시 미소짓게 한다. 

“다섯 개의 객실과 카페를 직접 꾸미면서 각 공간마다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히려 했어요.”

삼 면으로 창이 난 방 처럼, 하도리오길잘했어의 다른 객실도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돌집의 가운데 돌을 하나 쏙 빼서 만든 비밀의 창이 있는 방, 나무로 된 창문을 열었을 때 훅- 불어오는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이 편안함을 주는 방, 천장에 달린 드라이 플라워가 머리 위에서 까꿍 인사와 함께 꽃같은 하루를 선물하는 방.

너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어 써도 되는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정갈한 커트러리가 눈길을 사로잡는 카페까지.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조금 느린 호흡으로 다가오는 이 카페 공간에도 주인의 세심함을 담았다.

물론, 이곳엔 편안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외부에 위치하고 있다. 온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봄과 가을에는 괜찮겠지만, 추운 겨울철이나 벌레가 말썽인 여름에는 분명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 부부는 대신 이 불편함을 여행지의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천장을 유리로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맑은 날엔 파란 하늘을 보거나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비가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들으며 샤워를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불편함을 그냥 불편함으로 두느냐, 추억으로 만드느냐는 온전히 게스트의 몫이다. 

은은하게 밖의 풍경이 보이는 창, 천장이 유리로 된 샤워실. 다르게 말하면 프라이빗해야 할 공간이 완벽하게 가려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행히 이런 불편함이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 건, 이 곳이 여성 전용 숙소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자주 ‘혼자’ 여행을 즐기는 여행객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라 예전엔 늘 게스트하우스를 즐겨 찾았다. 그러나 여러 사건이 있고 난 후에는 주로 호텔을 이용하게 되었다.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지 않더라도, 남녀 객실이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신체적인 접촉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여전히 성범죄에 불안감을 가진 여성을 예민하게 취급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 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이 어느정도 원인을 제공했다 믿는 사람들도. 그런 사상이 불편하니 애초에 문제의 씨앗 조차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정도 안전함이 보장되어있는 호텔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성적인 부분들이 있다. 네모네모 칸 안에 들어간 다 똑같은 객실, 똑같은 침구. 편안하지만 이 곳이 제주인지, 부산인지 알 수 없는 통일된 감성과 호텔 특유의 과한 소독이 거쳐진 것 같은 향.

제주만의 감성을 느끼고 싶지만 내 안전도 보장받고 싶을 때, 그러면서 또 조용한 사색을 즐기고 싶은 여성 여행자에게 이곳 ‘하도리오길잘했어’는 다양한 모습으로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또 지친 마음의 휴식을 전한다.

모든 객실에는 주인이 남긴 편지가 놓여있다.

‘소박한 이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불편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 불편함이 때로는 좋은 추억, 기억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온전히 나만의 시간에 집중해보고 풀벌레 소리, 아침엔 새소리, 바람 부는 날엔 뒷마당에 흩날려 부딪히는 나뭇잎소리를 들어보세요. 제가 이 집을 처음 봤을때의 느낌이 게스트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라며-'

여행 정보펼치기

크리에이터펼치기

당신만을 위한 제주 여행을 완성해보세요

추천된 컨텐츠를 둘러보고 저장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여행 성향이 분석됩니다. 더 많은 컨텐츠를 볼수록 더 정확한 제주 여행 컨텐츠를 추천 받을 수 있어요.

당신의 성향에 맞춘 제주 여행

btn.message.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