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삶은 어떤 삶일지 상상해본다. 분명 조화롭고 평화로운 나날들이리라. 숲과 바다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표정에 여유가 넘치고 마음엔 모난 구석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제주도 한경면 저지리에 위치한 환상 숲 곶자왈 공원은 가족을 품은 숲이다. 가족들은 숲으로 들어와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기 시작했다. 숲과 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오랜 시간 따로 지내던 그들은 숲에서 다시 뭉쳤고, 새로운 가족을 만났으며, 숲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처음엔 아버지가 들어와 만들기 시작했던 숲을 이제는 가족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고 있다. 인터뷰를 나눈 딸 이지영 씨는 환상 숲 곶자왈이 단순히 숲뿐 아니라, 이곳을 지키고 있는 아름다운 가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숲이 품은 가족들은 표정에 여유가 있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가족들은 숲을 닮아있었다.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처럼 동화 같은 숲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이지영 씨의 표정은 해맑았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나는 내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곶자왈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곶자왈은 돌 위에 형성된 숲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굳은 용암 위에서 자라다 보니 돌 틈에서 지하공기가 새어 나오고, 이곳에서 새어 나오는 지하 공기로 인해 기후나 식생이 독특하게 형성된 숲이에요. 흙이 있다면 매워졌을 틈에서 15도 안팎의 공기가 새어 나오다 보니,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온도가 유지되는 곳이죠. 그래서 북방한계선 식물과 남방한계선 식물이 공존하게 된 숲입니다.

환상 숲 곶자왈은 가족분들이 운영하고 계신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어떻게 이 숲을 운영하시게 됐나요?

처음엔 이렇게 큰 숲이 될 줄 몰랐어요. 아버지께서 11년 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는데, 몸의 오른쪽이 마비되셔서 제대로 쓰시질 못했어요. 그래서 온전치 못한 몸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아버지께서 숲으로 먼저 들어오셨어요.

아버지께서 걸을 길이나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비가 오지 않은 왼쪽 손으로 본인 산책로를 만드셨던 거죠. 그렇게 길을 내고 산책을 하던 중에 마비됐던 오른쪽 몸이 회복되신 거에요. 아버지께서 마흔일곱 살에 쓰러지셨는데, 회복되셨던 게 5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으신 마음에 시작했던 것이 이 환상 숲 공원이에요.

아버지께서 내셨던 산책로가 지금 손님들이 다니는 길에 된 건가요?

비슷하기는 한데요, 처음의 길은 지금 현재는 해설사들이 주로 다니는 지름길로 쓰이고 있어요. 아버지께서 산책로를 내신 뒤에 손님들이 점점 오시기 시작하면서 다른 길을 추가로 낸 거죠.

아버지께서도 신기해하세요. 지금 멀쩡한 정신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길을 내야겠다’ 하는 식으로 구상했다면 못했을 것 같다고. 그때는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저기까지 가면 괜찮겠다’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길을 만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의도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러운 길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럼 곶자왈이 정식으로 사람들에게 개방된 때는 언제였나요?

6년 전에 아버지와 할머니 이렇게 두 분이 처음 개장했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말만 개장이었지 하루에 한 분이 올까 말까 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운영을 조금 도와줄 수 있냐며 서울에 있던 저를 부르셨어요. 그때 마침 제가 농촌 관련 컨설팅을 해주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아버지, 우리 가족에겐 도움을 못 주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한 달 유급휴가를 주셨고, 그렇게 내려오게 됐죠.

그럼 그 뒤에 쭉 정착하게 되신 건가요?

그때 내려와서 한 달 동안 살면서 안내판도 만들고 해설도 짜고 그렇게 보냈어요. 제 나름대로는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해서 올라가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올라가면 어떻게 하냐. 아직 하나도 모르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 더 휴직하겠다고 회사에 말했어요. 그 한 달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회사를 그만두고…어쩌다 보니 6년이 흘렀네요. (웃음)

아까 방문객들이 처음부터 많지는 않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많아지게 됐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나마 하루에 오시는 분이 한 두 분 정도 계셨는데, 그분들이 너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그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던 분들이 지인분들께 ‘제주도에 이런 좋은 숲이 있다’라며 홍보를 해주시니까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하도 신기해서 저희가 손님들께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러면 소개해주셨다는 분들이 어렴풋이 기억나더라고요. 신기했어요. 홍보비를 들인 적도 없고, 리플렛도 만든 적 없었는데. 아무래도 자본금이 없었으니 그런 것도 있었지만요.

결국, 사람에 대한 진정성이 빛을 발한 셈이네요. 혹시 오셨던 손님 중에 인상 깊으셨던 분들이 있나요?

초창기에 시각장애인 세 분이 찾아오신 적이 있었어요. ‘한 명만 와도 해설을 해준다더라’ 하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으신 거에요. 이분들은 빛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앞이 잘 안 보이시는 분들이라 숲이나 이런 곳에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대요. 솔직히 당황했죠. 보시지도 못하는 데다가 다른 숲처럼 평탄한 것도 아니고 돌과 바위가 많아서 울퉁불퉁한데 다치진 않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그때 해설을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잡혔던 것 같아요. 그 전엔 손님들이 오시면 보통은 나무의 이름을 묻거나, 이 식물이 어디에 좋고,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해 물어보셨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은 그런 외형적인 요소들이 전혀 쓸모가 없었던 거에요. 앞이 안 보이니까요. 오히려 이분들은 “오른쪽에서 꽃향기가 나는데 저 식물도 돌을 뚫고 열심히 자란 식물이겠죠?”라든지, “지금 새소리가 들리는데 쟤는 행복해하는 표정인가요?” 혹은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이 보일만큼인가요 아니면 안보일만큼 우거진 숲인가요?” 하는 것들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신선했어요.

그 전까지 저는 매일매일 똑같은 길을 걷다 보니 여기 있는 식물들을 웬만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분들과 다니니까 이 숲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아 우리가 봐야 하는 건 나무의 이름이 아니라 얘가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러면 나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구나. 정작 나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마음으로 보는 숲’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설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마음으로 보는 숲. 인상적인 경험입니다. 그런 해설이 곶자왈만의 독특한 점인 것 같네요.

네. 지금은 숲 해설을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하고 있지만, 저희 해설의 특징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듯이 해설을 한다는 점인 것 같아요. 처음엔 사람이 몇 명이 오더라도 해설을 진행하자는 것이 목표였어요. 혼자 오는 여행자분들은 예약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매 정시에 예정된 대로 해설이 진행된다면, 그런 분들도 부담 없이 오셔서 해설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안내를 해보자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해설하시는 분마다 스토리가 조금씩 다른 점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해설과 지영씨의 해설은 크게는 비슷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더라고요.

아마 전문가가 아니라서 가능했던 점이 아닐까 싶어요. 다른 분들의 해설은 식물들의 학술적인 부분을 많이 말씀하시거든요. 본인이 이 식물이 너무 좋고 궁금해서 이런 일을 시작하신 분들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여기서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 당시에도 나무나 풀의 이름을 알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래서 볼 수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몸이 완쾌됐던 기억 때문에 더 특별하게 기억하시는 것 같고요. 나무가 돌을 깨고 자라고, 잘렸는데도 자라는 모습들을 보면서 악착같은 생명력을 느끼셨던 분이었거든요. 가족들이 저마다 숲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억을 바탕으로 해설을 하다 보니 조금씩 다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숲에 소위 말하는 ‘힐링’, ‘치유의 감정’을 느끼고자 찾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럼 감정들이 피상적으로 다가오지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지영씨는 숲이 사람에게 주는 좋은 감정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한테는 일상이라서 숲이 주는 좋은 감정들을 너무 당연시 생각하고 있긴 한데요(웃음). 저는 에너지를 받는 경험이 숲이 주는 좋은 점, 힐링의 감정인 것 같아요.

좋은 사람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지만, 피곤한 사람 옆에 있으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피곤하잖아요? 이건 에너지를 내가 뺏기느냐 혹은 받느냐의 문제인 것 같은데, 숲은 그저 그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숲은 우직하게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거든요. 가만히 있는 듯이 보이지만 엄청난 활력을 띠고 있어요. 계속 움직이고,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옆에 있으면 에너지를 받잖아요? 숲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숲의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는 느낌을 받아요. 그 에너지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서의 활력이 아니라 더욱 좋고요. 고요한 활력이랄까요.

지영씨에게 곶자왈은 어떤 숲인가요?

과거의 곶자왈과 지금의 곶자왈을 대하는 제 태도가 많이 다르긴 해요. 저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숲인데, 6년 전에 내려왔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 혼자서는 숲에 한 번도 들어왔던 적이 없었어요. 무서운 숲이기도 했던 거죠. 귀중한 숲이라는 생각도 못 했었고요.

저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농사는 절대 짓지 않겠다. 꼭 서울로 올라갈 것이다.”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서울에 갔는데 막상 떠나오니 제주도가 그립더라고요. 내가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저에게 곶자왈은 가족 혹은 고향인 것 같더라고요. 있을 땐 몰랐지만 떠나서야 그리워지는 존재랄까요.

그리고 곶자왈 덕분에 가족들이 뭉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10년 넘게 떨어져서 지내면서 밥도 같이 먹을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숲을 통해서 매일 부대끼며 살게 됐죠. 숲이 어느 순간 가족의 존재가 된 것 같아요. 돌아올 곳이라고 할까요.

가족과 같은 숲. 어쩌면 환상 숲 곶자왈을 대표하는 가장 큰 키워드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곶자왈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계속 숲을 지키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더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찾는 숲이라기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찾더라도 좋은 사람들이 찾는 숲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나쁜 사람들도 우리로 인해 좋은 사람으로 변하고 갔으면 하는 욕심까지 보태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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