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여행으로 오는 곳에 한 번쯤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보는 일은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의 바람일 테다. 제주도에는 그런 꿈들이 모여드는 섬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생활자로서 살아보기 위해 한 달 살기 혹은 게스트하우스 스태프 등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이런 삶의 방식들이 이 섬에서는 익숙한 단어이자 행위로 자리 잡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여기는 잠깐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섬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특히 자금 사정이 넉넉지 못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경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방송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의 성공과 프로그램의 또 다른 주인공인 가수 아이유의 민박집 직원 생활은 사람들의 로망에 기름을 부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처럼,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 아닌 삶으로서의 여행을 택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 제주에 왔고,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여기, 스물두 살 길지선씨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문득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려왔고, 이 섬에서 나를 찾았다고 말한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여러 이유가 있는데요, 육지에 있을 땐 대학에 입학하고 최근 2년 동안 제가 스스로 감당 못 할 만큼의 일들을 벌이곤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것 같다, 조금 쉬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려오게 됐어요.

게스트 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걸 알게 된 건 작년에 제가 친구랑 제주여행을 했을 때였어요. 그때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마침 이번에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내려왔습니다.

감당하지 못할만한 일들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음.. 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다들 항상 앞으로만 달려가잖아요. 저는 학교 방송국 활동도 했었고, 대외활동도 같이하면서 과외도 두 세 개씩 하고 그랬어요. 근데 이걸 한꺼번에 하다 보니까 너무 지치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은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이게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끝내고 도망을 쳐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전에는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니까 바쁘게 살아야지, 더 바쁘게 살아야지’ 했는데, 갑자기 ‘이제 좀 도망을 쳐도 괜찮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려오게 됐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저는 좀 게으름뱅이라서(웃음) 평소에 열한시에 일어나요. 그렇지만 산책을 하고 싶은 날엔 일곱시에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근처 포구로 간 다음 바다를 한번 쭉 보면서 걷다가 와요. 여름 제주도가 무척 더운데, 그나마 그 시간에 햇볕이 가장 덜 강하더라고요.

그렇게 걷고 오면 좀 쉬다가 열 한시 부터 청소를 해요. 객실 청소. 이불을 개거나 바꿔놓기도 하고, 청소기를 돌리는 등의 일을 한시까지 합니다. 그런 다음 밥을 먹고 나면 네 시까지 자유시간인데, 그때 저는 자기도 하고 기타도 치고 책도 읽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그러다가 네시가 되면 새로 입실하시는 분들 안내를 해드려요. 그런 다음 일곱시부터는 게스트하우스 파티를 쭉 합니다.

일주일 내내 하는지?

아 아뇨. 4일 일하고 3일 쉬는 식으로 하고 있어요.

기타는 원래 치셨어요?

예전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쳐보고 싶어서 사서 코드 잡으면서 조금 쳤었는데, 다 까먹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왔더니 마침 사장님께서 기타를 칠 줄 아시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다시 조금씩 배우면서 다시 치고 있어요.

사장님과 잘 맞는 것 같네요

네 맞아요. 여기서 처음에 연락이 왔을 때도 제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왠지 사장님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다른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우엔 스태프들 이야기 들어보면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여기 왜 왔지?’ 하고 이틀 만에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그랬으면 아마 저는 안 맞았을 거예요. 제가 한량 혹은 게으름뱅이 기질이 다분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도 매니저 오빠도 스태프 언니도 잘 챙겨주셔서 개인적으로는 너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는구나’싶어졌어요. 그리고 여행이나 이런 측면에서는 어디를 가야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행이었다면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하루 만에 최대한 많은 곳을 가야 된다고 보통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 급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오늘은 여기 가볼까? 아니면 나중에 갈까? 이럴 수도 있고, 오늘은 가까운 데만 가보자! 이럴 수도 있어요. 조급함이 없어지고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생활자로 살면.

맞아요. 오히려 살게 되면 잘 돌아다니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혹시 내가 너무 나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닌가 싶진 않나요?

저는 애초에 쉬려고 내려온 거여서 나태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일에도 크게 관심이 없고요. 제가 요즘에 작곡을 배우고 있는데, 작곡에 도움이 될 만한 혹은 영감을 받을 만한 재료들을 채우고 돌아가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바다가 보고 싶으면 잠깐 바다 보고 오고, 뭐 미술관 가고 싶으면 미술관 가고, 이런 식으로.

제주도는 차가 없으면 다니기가 불편하지 않나요?

네 그래서 저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히치하이킹도 몇 번 했었어요. 가고 싶은 데가 없는 날은 마음 맞는 게스트 분들 차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전날 파티를 하면서 게스트 분들과도 조금 친해지게 되더라고요.

히치하이킹은 몇 번이나 했어요?

시도는 수 십 번 했는데 딱 두 번 성공했어요. 두 분 다 아버지 또래 분들이셨는데, 위험하다고 다시는 히치하이킹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도민분들이니까, 그분들 얘기를 듣는 재미도 또 색달랐어요.

사람들이 왔다 가면 아쉽거나 마음이 허하지 않나요?

일단 게스트 분 중에, 제가 여기 왔을 때 계셨는데 아직도 계신 분들도 계세요. 지금 저보다 오래 사는 셈인데, 그래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아무래도 여기가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하죠. 게다가 여기는 작년에 오시고 나서 같은 시기에 다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게 계속 오시던 분들이 오시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갈 사람은 간다’ 뭐 이런 느낌이 좀 들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사장님 모토가 ‘쿨하게 보내주자’예요. 하도 사람을 많이 보내니까 마음이 쓰이시나 봐요. 그래서 저 역시도 마음 안 쓰려면 쿨하게 보내드리자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한 달이 다 끝나가는데, 한 달은 좀 짧은 느낌이죠?

네. 생각보다 짧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휴학을 하고 더 있고 싶은데, 육지에 아직 못다 한 일들이 남아서 (웃음)…그런데 확실히 한 달은 조금 짧은 느낌이 있어요. 두 달 정도 있어도 시간이 아주 빠르게 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요.

끝나가는 시점에 어떤 기분이 드는지?

사실 아직까진 실감이 잘 안 나요. 할 수만 있으면 6개월 더 있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니까 나중에 언제 또다시 올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저는 이게 끝맺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른 게스트분들, 스태프 언니들과도 약속했어요. 시간이 되면 또 와서 보자고.

서울로 돌아가서 이 시기를 다시 떠올린다면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 같은가요?

약간 오글거리기는 하는데요, ‘나를 찾는 시간’이 됐던 것 같아요. 서울에선 바쁘게 살다 보니까 이 일을 끝내고 다음 날 바로 새로운 일을 해야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쉬는 시간이 없었죠. 그래서 저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는데, 여기선 그럴 시간이 많다 보니 제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에 올라가면 이 시간을 ‘길지선이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진짜 길지선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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