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눈이 내리기도 한참 전에 하얗게 물드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도 표선면에 위치한 메밀꽃 밭, 보롬왓이다. 메밀꽃하면 정규교육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효석 작가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그만큼 옛날부터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익숙한 꽃이 바로 메밀꽃인데, 특히 근래에 들어 메밀꽃밭이 연인과 가족들의 나들이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아마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했던 한 드라마의 영향을 받은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드라마 속의 메밀꽃 촬영지는 제주도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지만.

보롬왓은 바람을 뜻하는 제주어 보롬과 밭을 뜻하는 왓이 합쳐진 곳으로써, 바람이 부는 밭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이 중산간의 보롬왓 지역은 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라서 거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이곳에서 기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년에 총 두 번 봄과 가을에 수확하는데, 봄에도 가을에도 제주의 중산간 지역은 여행하기에는 최고의 날씨이니 이 시기에 제주에 놀러 왔다면 한 번쯤 들러도 좋을 법한 곳이다.

저 멀리 보롬왓의 카페와 메밀꽃밭이 보이기 시작하면, 은은하고도 알싸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메밀꽃의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상태의 꽃 내음을 맡을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청명한 제주의 푸른 하늘과, 이국적인 나무들, 신비로운 오름을 배경으로 펼쳐진 하얀 메밀꽃밭의 알싸한 향기를 맡고 있으면, 문득 어느 화가가 그린 유명한 명화 속의 풍경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메밀꽃밭을 흔히 ‘눈이 내렸다’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가까이서 보는 메밀꽃밭은 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작은 팝콘들이 모여있는 모습에 더 가깝다. 메밀꽃뿐 아니라 보롬왓에는 라벤더를 비롯해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어서 산책하는 재미를 더해주기도 한다.

꽃밭을 산책하고 난 뒤에는 방금 지나온 아름다운 길들이 커다란 유리창너머로 보이는 카페에 앉아보자. 이 곳에서 직접 기른 메밀을 비롯한 농산물들로 만든 빵과, 음료를 마시며 한가로이 떠 가는 구름과 머리카락을 흩뜨리는 바람의 결을 느끼고 있으면, 세상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여유로이 흘러갈 것만 같이 느껴진다. 보롬왓은 단순히 메밀꽃밭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금까지 내가 보고 느끼고 냄새맡은 재료들로 만든 음식들이 있는 카페에서 더 내밀한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특히 매력적이다.

가족 혹은 커플이 가볍게 자연 속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고 싶다면 보롬왓은 수 많은 선택지 중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중의 하나다. 정제됐으나 너무 가볍지 않은, 그러나 너무 무겁지도 않은 자연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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